주방용품이나 해외에서 구입한 플라스틱 용기를 살펴보다 보면 와인잔처럼 생긴 컵 옆에 포크가 그려진 작은 표시를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그림만 보면 ‘식기세척기에 넣어도 된다는 뜻인가?’ 또는 ‘음식을 담아도 된다는 뜻인가?’ 하고 헷갈리기 쉽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와인잔과 포크가 나란히 그려진 표시는 식품과 접촉하도록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식품접촉용 표시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알아둘 점이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흔히 ‘컵과 포크 마크’라고 부르는 이 그림은 유럽연합(EU)의 식품접촉재료 관련 규정에서 사용하는 공식적인 표시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식품용 기구를 구분하기 위한 표시 제도가 있지만 도안과 적용 기준은 별도로 정해져 있습니다.
따라서 비슷해 보이는 식품용 표시라고 해서 국가별 제도를 모두 같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컵과 포크 모양은 정확히 무엇을 의미할까?
흔히 컵이라고 생각하는 왼쪽 그림은 실제 EU 규정의 공식 도안을 보면 와인잔에 가까운 모양입니다. 그 오른쪽에 포크가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이 표시는 유럽연합의 Regulation (EC) No 1935/2004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해당 규정은 식품과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접촉하도록 만들어진 재료와 제품에 관한 기본적인 요구사항을 다루고 있습니다.
규정 제15조에 따르면 판매될 때 아직 식품과 접촉하지 않은 재료나 제품에는 필요한 경우 ‘for food contact’라는 문구나 구체적인 용도, 또는 규정 부속서에 제시된 표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그 부속서에 있는 그림이 바로 와인잔과 포크 모양입니다.
따라서 해외 주방용품에서 이 표시를 발견했다면 기본적으로 식품과 접촉하는 용도로 만들어진 제품임을 나타내는 표시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컵과 포크 표시가 있으면 전자레인지에도 사용할 수 있을까?
여기서 가장 많이 하는 오해가 생깁니다.
컵과 포크 표시가 있다고 해서 전자레인지 사용이 가능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표시가 알려주는 핵심 정보는 식품과 접촉하도록 만들어진 제품이라는 것입니다.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 여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를 들어 식품을 담을 수 있는 접시라고 하더라도 반드시 전자레인지에서 가열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식품용 플라스틱 용기라고 해서 모두 전자레인지용인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용기를 전자레인지에 넣으려면 컵과 포크 표시만 볼 것이 아니라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 표시와 제조사가 안내한 사용조건을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앞서 살펴본 PP 표시와 같은 원리입니다.
PP는 어떤 재질인지 알려주는 정보이고, 식품용 표시는 어떤 용도로 만들어졌는지 알려주는 정보이며, 전자레인지 표시는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정보입니다.
서로 역할이 다릅니다.
식기세척기 사용 가능 표시도 아니다
컵과 포크 그림을 식기세척기 사용 가능 표시로 오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 역시 다른 정보입니다.
식품과 접촉할 수 있다는 것과 식기세척기의 높은 온도와 세척 과정에서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별개의 조건입니다.
식기세척기에 넣을 제품이라면 제조사가 안내하는 식기세척기 사용 가능 여부를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결국 제품에 여러 종류의 기호가 표시되어 있는 이유도 각각 전달하는 정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재질 표시
식품용 표시
전자레인지 사용 표시
식기세척기 사용 표시
냉동 관련 표시
이런 정보를 하나의 의미로 묶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표시가 없으면 식품을 담으면 안 되는 걸까?
이 부분도 단순하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EU 규정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Regulation (EC) No 1935/2004 제15조에는 제품의 특성상 식품과 접촉하도록 만들어진 것이 명백한 경우에는 해당 식품접촉 표시가 의무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가 보더라도 음식에 사용하는 것이 명확한 제품까지 모두 동일한 방식으로 표시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입니다.
따라서 와인잔과 포크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 제품은 식품용이 아니다’라고 단정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제품이 판매되는 국가의 규정과 제품의 용도, 제조사의 표시사항 등을 함께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도 식품용 마크가 있을까?
있습니다.
다만 EU의 와인잔과 포크 표시를 그대로 사용하는 제도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도 식품용 기구를 소비자가 구분할 수 있도록 식품용 기구 구분 표시제도를 운영해 왔습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공개한 ‘식품용 기구 도안 디자인 가이드라인’을 보면 식품용 기구에는 ‘식품용’이라는 단어나 정해진 식품용 기구 도안을 표시하도록 하는 제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제도는 재질에 따라 단계적으로 시행됐습니다.
금속제는 2015년, 고무제는 2016년, 합성수지제는 2017년, 나머지 대상 재질 등은 2018년부터 단계적으로 적용됐습니다.
따라서 국내에서 판매되는 제품을 확인할 때는 해외에서 사용하는 컵과 포크 그림만 찾을 것이 아니라 국내 식품용 표시도 함께 알아두는 것이 좋습니다.
한국의 식품용 표시와 유럽의 컵·포크 표시는 같은 것일까?
목적에는 공통점이 있지만 제도적으로는 구분해야 합니다.
EU의 와인잔과 포크 표시는 EU 식품접촉재료 규정에 근거합니다.
반면 우리나라의 식품용 기구 표시는 국내 식품 관련 법령과 기준에 따라 운영됩니다.
즉,
유럽 제품에서 보는 와인잔+포크 표시 = EU 식품접촉용 표시
국내 제품에서 확인하는 식품용 표시 = 대한민국 기준에 따른 식품용 기구 표시
라고 구분해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해외 직구로 주방용품을 구입하는 경우 여러 국가의 표시를 접하게 되는 만큼 이 차이를 알아두면 제품 정보를 해석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식품용 표시가 있으면 무조건 안전하다는 뜻일까?
‘식품용’이라는 말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해서도 안 됩니다.
식품용으로 만들어진 제품이라고 해서 어떤 음식이든 담을 수 있고, 어떤 온도에서든 사용할 수 있으며, 전자레인지와 오븐에서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제품의 안전한 사용에는 용도와 사용조건이 중요합니다.
EU의 식품접촉재료 규정에서도 필요한 경우 안전하고 적절한 사용을 위해 지켜야 하는 특별한 사용 지침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식품용 플라스틱 용기라 하더라도 제조사가 정한 온도 범위를 벗어나 사용해서는 안 될 수 있습니다.
오븐에 사용하는 제품이라면 오븐 사용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하고, 냉동할 제품이라면 냉동 조건을 확인해야 합니다.
식품용이라는 말은 모든 사용환경을 허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해당 제품이 식품과 접촉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플라스틱 숫자와 컵·포크 표시는 무엇이 다를까?
플라스틱 용기에서는 여러 표시가 동시에 발견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용기 바닥에 숫자 5와 PP가 있고 그 주변에 식품용과 관련된 표시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각각의 의미는 다릅니다.
‘5 PP’는 폴리프로필렌이라는 플라스틱 수지를 식별하는 정보입니다.
반면 식품용 표시는 해당 제품이 식품과 접촉하는 용도로 만들어졌다는 사실과 관련된 정보입니다.
쉽게 구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PP, PET, PE 등 →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식품용 표시 → 무엇을 담는 용도로 만들었는가?
전자레인지 표시 → 어떤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가?
이렇게 나눠서 보면 제품 바닥에 여러 기호가 복잡하게 표시되어 있어도 하나씩 의미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식품용 플라스틱 용기를 고를 때 무엇을 확인할까?
플라스틱 용기를 구입하거나 사용할 때 저는 표시 하나만 확인하기보다는 몇 가지 정보를 순서대로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제품의 용도를 확인합니다.
음식을 담을 목적이라면 식품 접촉을 고려해 제조된 제품인지 확인하는 것이 첫 번째입니다.
그다음 재질을 확인합니다.
PP, PET, PE 등 어떤 재질이 사용되었는지 살펴봅니다.
마지막으로 실제 사용환경을 확인합니다.
전자레인지에 사용할 예정이라면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 여부를, 냉동실에 넣을 예정이라면 냉동 관련 사용조건을 확인합니다. 식기세척기로 세척할 예정이라면 이 역시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결국 제품 하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식품용인가’와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가’를 구분해서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컵과 포크 표시의 의미를 정리하면
해외 주방용품에서 볼 수 있는 와인잔과 포크 모양은 식품과 접촉하도록 만들어진 제품임을 나타내는 대표적인 식품접촉용 표시입니다.
하지만 이 표시를 발견했다고 해서 전자레인지나 오븐, 식기세척기, 냉동실에서 모두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각각의 사용 가능 여부는 별도로 확인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나라에는 국내 기준에 따른 식품용 기구 표시제도가 있기 때문에 해외의 와인잔·포크 표시와 국내 식품용 표시를 완전히 동일한 제도로 생각해서도 안 됩니다.
정리하면 제품에 표시된 정보를 볼 때는 다음 세 가지 질문으로 나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무엇으로 만들었는가?
무엇을 위해 만들었는가?
어떤 환경에서 사용할 수 있는가?
PP나 PET 같은 재질표시는 첫 번째 질문에 답하고, 식품용 표시는 두 번째 질문에 답합니다. 전자레인지나 식기세척기 같은 사용 가능 표시는 세 번째 질문에 답합니다.
주방용품 바닥에 있는 작은 그림들이 처음에는 모두 비슷해 보이지만 역할을 구분하고 나면 의외로 읽는 방법은 어렵지 않습니다.
다음에 플라스틱 밀폐용기나 해외에서 구입한 주방용품을 사용할 일이 있다면 바닥을 한번 살펴보세요. 와인잔과 포크처럼 생긴 그림이 있다면 이제 적어도 그것이 전자레인지 표시인지 식기세척기 표시인지 고민할 필요는 없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