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나 음료를 다 마신 뒤 페트병 바닥을 살펴보면 숫자 1과 함께 PET 또는 PETE라는 영문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PET는 익숙합니다. 우리도 흔히 음료수병을 ‘페트병’이라고 부르니까요. 그런데 PETE라고 적혀 있는 제품을 보면 조금 헷갈립니다.
‘PET와 PETE는 서로 다른 플라스틱인가?’
저도 처음에는 PETE가 PET의 다른 종류를 뜻하는 줄 알았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PET와 PETE는 기본적으로 같은 종류의 플라스틱을 가리키는 표기입니다.
정식 명칭은 Polyethylene Terephthalate, 우리말로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입니다.
그렇다면 왜 어떤 제품에는 PET라고 쓰고 다른 제품에는 PETE라고 쓰는 걸까요? 그리고 PET 옆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숫자 1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하나씩 알아보겠습니다.
PET와 PETE는 다른 플라스틱일까?
PET는 Polyethylene Terephthalate의 약자입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식품접촉물질 데이터베이스에서도 Poly(ethylene terephthalate)의 다른 명칭 가운데 하나로 PET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PETE 역시 같은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를 나타내는 표기입니다.
따라서
PET = Polyethylene Terephthalate
PETE = Polyethylene Terephthalate
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PETE에서 마지막 E가 하나 더 붙어 있다고 해서 PET보다 성능이 좋거나 다른 등급의 플라스틱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해외 제품의 수지식별표시를 보다 보면 PETE라는 표기를 접할 수 있고, 국내에서는 PET라는 표현이 훨씬 익숙합니다.
우리말에서 사용하는 ‘페트병’이라는 이름 역시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PET에 숫자 1이 표시되는 이유
PET 제품에서는 숫자 1도 자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숫자는 플라스틱 수지의 종류를 구분하기 위해 만들어진 수지식별코드(Resin Identification Code)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체계에서는 PET 계열에 숫자 1이 부여됩니다.
그래서 제품에 따라 숫자 1과 PET 또는 PETE가 함께 표시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숫자 1은 안전성이나 품질을 평가한 점수가 아닙니다.
‘1등급 플라스틱’이라는 의미도 아니고 숫자 5인 PP보다 우수하거나 열등하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ASTM의 수지식별코드 표준에서도 이 코드의 목적을 제조된 제품에 사용된 플라스틱 수지를 식별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PET 옆의 숫자 1을 발견했다면 ‘이 제품에 사용된 플라스틱 수지를 식별하는 번호’ 정도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숫자 1이 있으면 무조건 재활용된다는 뜻일까?
숫자를 둘러싼 기호 때문에 이를 ‘재활용 번호’라고 알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정확하게 구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ASTM은 수지식별코드가 재활용 코드(recycle code)가 아니라고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품에 이 코드가 표시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가 해당 제품이 재활용됐다는 의미도 아니며, 이를 실제로 처리할 재활용 시스템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장하는 것도 아닙니다.
즉,
‘숫자 1이 있다 = PET 계열 수지를 식별하는 정보’
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실제 분리배출 방법은 해당 제품의 국내 분리배출 표시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배출 기준을 확인해야 합니다.
수지의 종류를 알려주는 정보와 실제 분리배출 방법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PET는 왜 음료수병에 많이 사용될까?
PET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생수병이나 탄산음료병입니다.
여기에는 PET의 물성이 영향을 미칩니다.
PET는 투명한 제품을 만들 수 있고 포장재와 용기 등에 활용되는 열가소성 폴리에스터입니다. 음료와 식품을 담는 용기뿐 아니라 필름과 시트 등 다양한 형태로 활용됩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가장 쉽게 만나는 PET 제품이 생수병과 음료수병이기 때문에 PET를 페트병의 재질 정도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활용 범위는 더 넓습니다.
FDA의 식품접촉물질 자료에서도 PET가 식품 접촉 용도와 관련된 물질로 관리되고 있으며, PET를 이용한 병이나 필름 등 여러 식품접촉 제품의 사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PET라는 소재가 식품 관련 제품에 사용된다’는 사실과 ‘PET로 만들어진 모든 제품을 어떤 조건에서도 식품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은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완성된 제품은 제조사가 정한 용도와 사용조건에 맞춰 사용해야 합니다.
PET와 PP는 무엇이 다를까?
앞에서 살펴본 숫자 5 PP와 PET를 혼동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둘은 서로 다른 플라스틱입니다.
PET는 Polyethylene Terephthalate이고 PP는 Polypropylene입니다.
수지식별코드에서도 각각 다르게 분류됩니다.
PET 또는 PETE는 1번,
PP는 5번입니다.
실생활에서도 두 소재가 사용되는 제품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PET는 생수병이나 음료 용기 등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고, PP는 밀폐용기나 각종 생활용품 등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PET는 음료수병, PP는 밀폐용기’처럼 용도를 완전히 고정해서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플라스틱은 제품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가공되기 때문입니다.
제품의 정확한 재질을 알고 싶다면 외형만 보고 추측하기보다는 제품에 표시된 재질 정보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PET 용기는 전자레인지에 사용해도 될까?
PET를 검색하다 보면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 여부에 대한 질문도 많이 나옵니다.
이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PET라는 재질명만 보고 전자레인지 사용 여부를 판단하지 않는 것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숫자 1이나 PET 표시는 기본적으로 수지를 식별하기 위한 정보입니다.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 표시가 아닙니다.
따라서 PET라고 적혀 있는 일반적인 생수병이나 음료수병을 보고 ‘플라스틱이니까 전자레인지에서도 사용할 수 있겠지’라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반대로 모든 PET 관련 제품을 하나의 조건으로 묶어서 설명하는 것도 정확하지 않습니다. PET 계열 수지는 필름이나 시트 등 여러 형태로 가공되고 용도에 맞게 설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자레인지에 사용할 제품이라면 PET라는 글자보다 해당 완제품에 표시된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 여부와 제조사의 사용 지침을 우선 확인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이 원칙은 PP를 비롯한 다른 플라스틱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재질표시는 ‘무엇으로 만들었는가’를 알려주고, 사용방법 표시는 ‘어떻게 사용할 수 있는가’를 알려줍니다.
둘을 구분하면 플라스틱 제품을 이해하기가 훨씬 쉬워집니다.
생수 페트병에 뜨거운 물을 담아도 될까?
PET 제품을 사용할 때 또 하나 많이 궁금해하는 것이 뜨거운 물입니다.
이 문제 역시 ‘PET는 몇 도까지 안전하다’라는 하나의 숫자만 보고 판단하는 방식은 추천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실제로 사용하는 것은 PET 원료 자체가 아니라 특정한 용도로 설계되고 제조된 완제품이기 때문입니다.
생수를 담아 판매하는 페트병이라면 우선 제조사가 의도한 용도가 생수를 보관하고 유통하는 용기입니다.
따라서 뜨거운 물을 담거나 가열하는 등 원래 설계된 것과 다른 용도로 사용하려면 별도의 사용 가능 여부를 확인해야 합니다.
뜨거운 내용물을 담아야 한다면 처음부터 해당 온도와 용도에 맞게 만들어진 용기를 사용하는 것이 가장 간단하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다 마신 페트병을 물병으로 계속 사용해도 될까?
생수를 다 마신 후 병에 다시 물을 채워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 문제를 단순히 ‘PET가 안전한 소재인가 아닌가’만으로 판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습니다.
반복 사용 여부에는 재질 외에도 용기의 구조, 세척 가능 여부, 오염 관리, 제품이 애초에 반복 사용을 전제로 설계됐는지 등이 관계됩니다.
특히 입구가 좁은 음료수병은 내부를 충분히 세척하고 건조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일회용으로 판매된 음료 용기를 장기간 물병처럼 반복해서 사용하기보다는 반복 사용을 목적으로 제작되고 세척하기 쉬운 물병이나 용기를 사용하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PET라서 무조건 재사용하면 안 된다’는 식의 단순한 결론이 아닙니다.
제품의 원래 용도를 확인하고 그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PET와 rPET는 무엇이 다를까?
최근에는 생수병이나 포장재에서 rPET라는 표현도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rPET의 ‘r’은 일반적으로 recycled를 의미하며, 재활용 PET를 가리킬 때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PET와 완전히 별개의 플라스틱 종류라기보다는 회수된 PET를 적절한 공정을 거쳐 다시 원료로 활용한 것과 관련된 표현이라고 이해하면 쉽습니다.
식품과 직접 접촉하는 재활용 플라스틱은 단순히 폐플라스틱을 녹여 다시 만드는 문제만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원료 관리와 재활용 공정, 오염물질 관리 등 식품 접촉 용도에 맞는 조건을 고려해야 합니다.
실제로 미국 FDA도 식품접촉제품에 사용되는 재활용 플라스틱과 관련해 제출된 재활용 공정을 별도로 검토하고 관련 자료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PET와 rPET라는 표현을 발견했다면 각각 원료와 재활용 원료 사용 여부에 관한 정보라는 점을 구분해서 보면 됩니다.
PET와 PETE의 차이를 정리하면
지금까지 내용을 간단하게 정리해보겠습니다.
PET의 정식 명칭은 Polyethylene Terephthalate, 즉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입니다.
PET와 PETE는 기본적으로 같은 종류의 플라스틱을 가리키는 표기이며, PETE라고 적혀 있다고 해서 PET와 다른 등급의 플라스틱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리고 PET 계열의 수지식별번호는 1번입니다.
따라서 제품에서
1 PET
1 PETE
등의 표시를 발견했다면 해당 플라스틱 수지를 식별하기 위한 정보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만 숫자 1이나 PET라는 표시만으로 전자레인지 사용 가능 여부, 반복 사용 가능 여부, 실제 분리배출 방법까지 모두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재질표시는 어디까지나 제품을 이해하기 위한 정보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저도 예전에는 페트병 바닥의 숫자가 단순히 재활용할 때 보는 표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씩 살펴보니 숫자는 플라스틱의 종류를 구분하는 출발점에 가깝습니다.
PET 또는 PETE를 발견했다면 먼저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 숫자 1’을 떠올리고, 실제 제품을 어떻게 사용하거나 버려야 하는지는 제품의 용도와 별도의 표시사항을 추가로 확인하면 됩니다.
작은 숫자 하나지만 그 의미를 정확히 알고 나면 플라스틱 제품에 적혀 있는 표시들이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 시작합니다.